괴물의 심연-싸이코패스 신경과학자의 자기탐색

여자친구에게 빌려서 하루동안 읽은 책이다. 권위있는 뇌과학자가 자기(self)를 탐색(?)하는 과정을 살펴봤다는 느낌이 든다. 신경과학과 유전학의 내용이 많이 들어가 있어 전공자가 아닌 경우 잘 읽히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 James Fallen
역자 김미선
발매 2015. 03.13.
별점 ★★★☆☆

한줄평

교과서 같이 작성된 자서전. 

리뷰

책의 저자인 James Fallen은  지금도 연구를 수행하고 있는 아주 저명한 신경과학자이다. 싸이코패스의 신경 실질을 연구하고 강연을 하다가 자신의 PET 영상을 봤는데 싸이코패스의 특징을 그대로 담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어 자신의 과거를 되돌아보고, 선조들의 과거들을 뒤짚어보면서 "왜?" 자신은 무자비한 살인마가 되지 않았는지에 대한 생각이 정리되어 있다.

요점만 말하자면, 모든 싸이코패스가 무자비한 살인마가 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기질(예, 전측두엽의 저기능, 고위험변이 유전자)은 분명히 있지만, 사랑받는 분위기에서 양육됐기 때문에 공격성을 조절하고 통제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공감 능력이 부족하지만 그렇다고 사회에서 적응을 못하진 않았으며, 우월한 지배의식으로 성과를 쌓아 사회적으로 인정 받을 수 있었다고 회상한다.

좋았던 점

1. 유전학과 뇌영상을 연구하는 사람답게 관련 내용들을 잘 설명했다고 생각한다. 공감(empathy)과 동정(sympathy)의 개념 구분은 정말 명쾌했다. 싸이코패스들은 공감능력(타인의 감정을 자신이 경험하듯 상상하는 것)은 떨어지지만, 동정능력(다른 사람의 고통을 덜어주고자 하는 능력)은 그렇지 않다고한다. 

2. 싸이코패스의 특징(성비, 행동특징, 지역별 분포차이)들을 유전적, 신경학적 관점에서 날카롭게 분석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와전두피질, 내측두엽에 걸쳐 관련된 두뇌의 기능을 풀어써내고, 그런 기능들을 담당하는 두뇌의 활동력이 떨어지는 것이 싸이코패스의 어떤 행동 특성과 관련있는지 설명한다. 중간중간 삽입된 PET 영상, 자신의 뇌파 특징은 설득력을 높이는데 충분했다.


3. 어쩌면 이 책이 자서전이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자신의 과거를 상세하게 작성했다. 책의 중반이 어렵지 않게 읽힌 이유기도 하다. 오랫동안 자신과 관계를 유지한 가족. 친구들로부터 받은 인터뷰, 편지뿐만 아니라 자신의 기억을 명료하게 정리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정체와 앞으로 해야될 일들을 이해하기 위한 퍼즐을 맞춰나가는 과정을 지켜볼 수 있었다. 자신이 싸이코패스라고 느끼면 당혹할 법도 한데 저자는 냉정하게 근거를 찾고, 그런 자신을 인정하는 모습이 인상깊게 느껴졌다.

4. 그렇지만 당당하게 자신이 싸이코패스라고 밝히는 일은 정말 어려웠을 것이다. 그리고 그 이후 자기 주변의 다른 사람들의 반응을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태도를 바꾸지 않았지만, 한 친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전 더는 싸이코패스 주위에 있고 싶지 않아요
저자는 그 사람에게 어떠한 해악도 끼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만약 내가 주변 사람들에게 그런 말을 들었으면 좀 억울했을 것 같다. "뇌와 유전자가 싸이코패스의 그것과 유사하다는게 싸이코패스라는 것을 의미하는가?"라는 물음을 던져준다.



아쉬웠던 점

이 책은 좋았던 점도 많지만 아쉬웠던 점도 많다. 결론('나는 싸이코패스다')을 세우고 그 근거들을 끼워맞췄다는 느낌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1. 이 책의 저자는 두뇌 영역의 개별적인 기능에 초점을 맞춰 자신을 이해한다. 두뇌 영역들 간의 연결성도 중요하다는 내용이 잠깐 언급되지만, 정말 잠깐일 뿐이다. 그런 부분에 있어서 이 사람이 신경해부학에 전문가라는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렇지만 너무 두뇌의 국소화(localization)에 치중한 해석을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은 든다. 


2. 살인을 저지르는 무자비한 싸이코패스들은 특정 상황에서 공격성이 극대화될 것이다. 그들에 대한 인터뷰를 들어보면 평상시에는 굉장히 멀쩡한 사람인 것 처럼 받아들여진다. 이런 상황적 조건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되는데, 이 책에서 인용한 대부분의 연구들은 신경해부학적, 유전적 정보들만을 다룬다. 즉 공격성이 높고 공감능력이 낮은 특질을 언급하는데, 특정 상황에서 이런 특질들이 어떻게 발현된다든지 하는 정보도 함께 있었으면 좋을 것 같았다.  "상황과 사람"보다는 "뇌와 유전자"에 너무 많은 설명력을 부여한 것은 아쉬웠다.


3. 정작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심리평가 보고는 얼마 없다. 자신이 싸이코패스라고 생각하면, 'PCL-R을 한 번 정도는 받아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런 것은 없었다MMPI(객관적 검사)나 HTP(투사검사)와 결과에서 자아강도가 세고 남들을 조종하려는 성향이 있음이 나타나지만, 그것만으로는 싸이코패스라고 단정짓기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IQ가 150인 것은 정말 부러웠다).



느낀점

1. 책의 초반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뇌의 병변을 뇌영상으로 확인해서 사형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된 사람들이 있다고. (1990년대에) 뇌와 유전자가 감형 증거로 제출되는 미국의 법체계가 신기하게 느껴졌다. 우리나라도 저렇게 될까? 싶기도 하지만, 아직은 이르다고 본다.

2. 이 책에서 저자는 얘기한다. 전두엽의 저기능과 전사 유전자가 존재해도, 나머지 하나의 퍼즐(불운한 가정)이 맞춰지지 않으면 살인자가 되지는 않는다고. 양육 환경의 중요성을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책에서 가장 강조하고픈 내용이 아니었을까 싶다.


P.S. 그러면서 한창 1980년대에 성격심리학 분야에서 유행했던 대립 주제(nature vs nuture)가 떠올랐다. (당연하지만) 결국에는 다 중요하다는 결론으로 귀결됐다.

3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수용하면서,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이것저것 시도해보는 저자의 노력이 인상적이다. 이미 많은 것을 누리고 있지만 그 안에서도 자신의 부족한 점을 이해하고 개선하려는 사람은 흔치 않다. 나 자신을 돌아보면서 성찰해보는 기회를 갖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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