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회가 되면 매일 연구 하나씩 정리하고 생각을 나누는 시간을 갖고 싶습니다. 한동안은 제가 참여한 연구에 대해서 정리하는 시간이 많을 것 같고, 점차 다른 연구들도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정리할 것은 MMORPG 이용자들을 대상으로 게임 동기, 게임 내 행동, 그리고 게임 중독 간의 관계를 살펴본 연구(링크)입니다. 이 연구는 2018년도 건강심리학회 우수논문상(공동 2등)을 수상했습니다.
이 논문의 제1저자인 정겨운과 저 그리고 이인혜 교수님은 인터넷 게임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 중 동기요인에 특별히 관심이 많습니다. 게임이 자신한테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을 알지만, 멈추지 못하는데는 어떤 이유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죠. 몇몇 연구자들은 그 이유로 생물학적으로는 보상 회로의 결함을 들거나, 인지적으로는 게임을 하고 싶은 충동을 억제하지 못한다는 이유를 제시하기도 합니다. 이런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병리적인 게임 행동을 지속하게 만들기도 하겠지만 저희들은 단순하게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게임 행동이 가져다주는 보상(reward)이 병리적 게임 사용을 유지하도록 이끄는 이유일 것이다
이 가장 단순한 발상에서 시작하여 게임 동기와 행동과 관련된 이론들을 찾아보았습니다. 욕구충족 이론에서 시작해 최근에는 Karther-Winther의 보상적 게임 사용 이론이 게임 동기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특히, 보상적 게임 사용 이론은 현실에서 충족하지 못하는 욕구를 채우는 수단으로 게임이 사용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이론들은 '어떤 방식으로' 욕구를 충족하는지 알려주고 있지 않습니다. '게임한다'에는 수많은 게임 내 행동이 포함됩니다. 접속하는 것, 상대방과 교류하는것, 자신의 캐릭터를 성장하는것, 타인들과 대결하는 것 등등 이런 수많은 행동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게임 행동'이라는 포괄적인 개념에 포함되어 그동안 연구가 되지 않았습니다. 평일 게임 이용 시간, 주말 게임 이용 시간, 게임 장르 등 주변적인 요인들은 (잠깐이나마) 주목을 받았었죠. 바로 이 게임 내 행동이 병리적 게임 사용을 지속하게 만드는 핵심 이유임에도 불구하고요.
게임 내 행동의 측정?
생각보다 게임 내 행동을 측정하는 척도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습니다. Worth와 Book(2014)의 연구에서 World of Warcraft 이용자들의 게임 내 행동을 범주화해서 정리한 척도가 있었거든요. 저희들은 이 설문지를 번안하여 사용했습니다. 이 설문지는 플레이어의 행동들을 대인 간 대결(PvP), 사회적 플레이어 대 환경(레이드), 작업 행동(좋은 아이템을 얻기 위한 노가다), 돕기 행동, 몰입 행동(자신만이 아는 무엇인가를 찾는 행동), 핵심 요소(레벨업)으로 구분했습니다.
가설
연구의 가설을 설정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습니다. 예를 들어, 공격동기가 높은 사람은 공격 행동을 이용할 것이며, 교우 동기가 높은 사람들은 친구들과 함께할 수 있는 컨텐츠(사회적 플레이어 대 환경)를 할 것이라고 생각했죠. 현실도피동기, 오락소일 동기, 도전성취 동기 등도 함께 조사됐습니다. 정리하면 어떤 동기가 특정 게임 행동을 촉발하고 그 행동이 강화되어 게임에 점진적으로 중독된다는 모형을 세우고 이를 검증했습니다. 아래의 모형처럼 말이죠.
결과
- 도전성취동기
도전성취동기는 게임 중독보다는 몰입과 관련있다고 보고된 요인입니다. 성취감을 목적으로 게임을 하는 성향이 강한 사람일수록 몰입감을 많이 경험한다고 보고되었죠. 저희의 연구에서도 이런 연구 결과를 지지하듯이 성취동기가 높을수록 중독 심각성이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 오락소일동기
단순히 즐거움을 위해 게임을 이용하는 동기는 중독과 어떠한 관련이 없었습니다. - 교우동기
저희의 연구에서 친구들과 함께 게임을 즐기려는 동기는 두 가지 상반된 효과를 나타냈습니다. 한 간접 경로(PVP 행동 매개)는 게임 중독에 정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반면, 다른 경로(돕기 행동 매개)는 게임 중독에 부적인 영향을 미쳤죠. - 현실도피동기
현실도피동기는 인터넷 게임 중독에 가장 위험한 동기요인입니다. 앞서 설명한 보상적 게임 행동이론에서도 게임이 유일한 도피수단으로 사용될 때 중독에 이를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저희의 연구에서 가장 영향력이 높은 동기 요인으로 나타나기도 했고요.
게임 행동과의 결과를 살펴보면 상대방을 돕는 행동을 감소시키고 이것이 게임 중독을 심화시키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 공격동기
현실도피동기 다음으로 게임 중독 연구에서 주목받는 요인입니다. 아무래도 폭력성과 관련되어 발생하는 사회적 문제, 특히 강력범죄의 요인으로 게임이 지적받았기 때문이죠. 저희의 연구에서도 게임 중독을 예측하는 요인으로 나타났고, 직/간접적 공격행동을 증가시키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결론
- 결과를 정리하면 특정 동기들은 게임 내에서 어떤 행동을 촉발시키고, 이런 행동이 가져다오는 결과물이 게임 중독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세부적인 해석은 논문을 참고하시면 좋겠습니다. 저희는 이런 연구를 통해서 게임 자체가 중독 요인임을 주장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게임은 '욕구를 해소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습니다. 게임중독자들의 경우 게임 외에 마땅한 대안이 없기 때문에 게임에만 의존하게 된다는 것이죠.
- 대개 이들은 원만한 사회적 활동을 하지 못합니다. 대인관계가 원만하지 않고, 정신건강도 취약하죠. 이런 사람들에게 집에서 혼자, 언제든지 편하게 즐길 수 있는 게임은 정말 국가가 허용한 유일한 마약이 될 수 있습니다. 만약 이런 사람들에게 강제로 게임을 못하게 하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요? 순순히 게임을 포기할까요? 즉 문제가 게임에 있다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 논문에서 심도깊게 다루지는 못했지만 저는 이런 사람들에게는 타인들과 건강한 상호작용을 주고 받을 수 있는 활동에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혹은 인터넷 게임 외에도 기능성 게임을 이용하도록 하는 것도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합니다. 이들에게 정서적 안정감을 줄 수 있는 다른 취미활동을 소개하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게임에 대한 관심은 줄어들겠죠.
마치며...
아무래도 학술 논문은 독자들이 연구자들로 크게 제한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연구를 풀어써서 제 생각도 정리하고 연구를 알릴 수 있는 기회도 생기는 것 같습니다. 만약 이런 연구를 발전시킨다면 다음에 어떤 것을 시도해볼 수 있을까요? 혹시 아이디어가 있거나 궁금한점이 있다면 댓글로 남겨주세요 :-)'오늘의 연구' 시리즈를 더 읽어보고 싶다면 이곳을 클릭해주세요(링크)!
참고문헌
정겨운, 정호진, & 이인혜. (2018). MMORPG 이용자들의 게임 이용 동기와 인터넷 게임 중독의 사이에서 게임 내 행동의 매개 효과. 한국심리학회지: 건강, 23(2), 547-5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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