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의 심리학-거절할 수 없는 유혹

욕망을 만족시키는 것은 참으로 기분 좋은 일이다. 

인도의 불교학자 나가르주나의 말입니다. 중독은 욕망을 만족시켜주는 어떤 물질이나 행동을 반복적으로 갈망하고 추구하는 증상을 의미합니다. 이 책에서는 왜 사람들이 자아를 버리고 중독물에 자신을 맡기게 되는지를 알려줍니다.

'중독의 심리학'입니다.





저자 Craig Nakken
역자 오혜경
발매 2008. 07.30.
별점 ★★★★☆


한줄평

중독을 걷어내고 나서야 보이는 심리적 공허함.


리뷰

  이 책에서는 중독을 '어떤 물질이나 행동과 맺는 병적인 관계'로 정의합니다. 정상적이고 사회적인 유대관계에서 경험할 수 있는 정서적인 욕구를 충족시키기 못하는데, 이를 다른 병적인 수단으로 채우는 과정에서 중독이 시작한다고 설명합니다.
  이 과정에서 자아와 '내면의 중독자'가 통제권을 주고 다투지만, 점차적으로 자아의 통제권이 내면의 중독자에게 넘어갑니다. 내면의 중독자가 발달하면서 성격도 변하게 되고, 주변 사람들이 거리를 두기 시작하면서 점점 더 고립되어집니다. 내면에서는 자아와 중독자가 투쟁을 벌이지만 항상 중독자의 승리로 귀결됩니다. 이들도 중독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식적으로는 알고 있지만, 실행(acting-out) 외에는 심리적 공허함을 채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나중에는 즐거움을 위해서 시작했던 실행들이 고통을 피하기 위한 수단이 되어버립니다. 더 이상 스스로의 힘으로 중독을 조절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나서야 치료를 시작하게 되죠. 때때로 자아를 모두 상실해버린 사람들은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합니다.
  심각한 중독 단계에서는 내적인 힘과 영성이 모두 부족한 상태입니다. 그렇지만 회복에 대한 잠재력은 갖고 있습니다. 그 동안 물질이나 행동을 통해 채워왔던 욕구를 다른 방법, 예를 들면 사람들의 정서적 지지를 얻음으로써 충족할 수 있습니다. 회복 과정에서 내면의 중독자는 끊임 없이 '쉬운 방법(실행)'을 속삭이지만, 진정한 삶의 의미를 추구하려는 노력을 통해 극복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마지막으로 가정환경의 문제가 중독을 만들 수 있다고 말합니다. 부모의 학대, 무관심, 수치심, 비일관성 등이 심리적인 공허함을 유발하여 내면의 중독자가 쉽게 발달할 수 있는 토대가 됩니다.


좋았던 점

  1. '비중독자'의 관점에서 보지 못했던 중독의 핵심들을 알게 되었다. 중독을 '왜 못 끊는거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제공합니다. 즉 중독행위를 그만두지 못하는 이유를 자세하게 설명합니다. 정신분석학 관점에서 개념과 과정을 설명하지만, 설득력있게 내용을 전개합니다. 중독자의 내면에서 발생하고 있는 치열한 투쟁과정과 점차 통제력을 잃고 내면의 중독자에게 순응해나가는 과정을 읽는 것이 안쓰러웠습니다.
  2. 문장이 아름답게 작성됐다. 요 근래 읽었던 책들 중에서 가장 우아한 문체로 작성된 것 같습니다. 예시도 거의 없이 저자의 생각이 정리되어 있지만, 워낙 깔끔하게 내용이 작성되어 있어서 쉬지 않고 책을 읽었습니다. 책도 200페이지 내외로 길지 않아 읽는데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아쉬웠던 점

  1. 정신분석학의 최고 난제중 하나가 주장의 근거를 제시하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이 책에서도 굉장히 많은 개념을 제시하고 과정을 설명하지만, 이에 대한 경험적 증거들이 거의 없습니다. 중독 과정의 핵심 개념으로 제시된'내면의 중독자'가 실존하는지, 존재한다면 정말 저자가 제안한대로 작동하는지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거의 없습니다. 저자의 직관과 통찰에 기반한 설명이 전부입니다. 그렇지만 충분히 설득력있는 내용들입니다.
  2. 세 단계의 중독 과정을 자세하게 설명한 것에 비해, 회복과 치료에 대한 설명은 너무도 부실합니다. 문제 해결(중독 회복)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부수적인 내용들을 다뤘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이 부분에서는 실용적인 내용이 전무하다 싶어서 특히 아쉬웠습니다.


그 외 느낀점

  1. 이 책을 조금 늦은 시기에 읽은 것 같아 아쉬웠습니다. 한창 인터넷 게임 중독을 연구할 때 읽었으면 영양가 있는 논문을 작성할 수 있었을 것 같았습니다. 자기와 세상에 대한 통제권을 잃어버린 이들에게는 믿고 의존할 대상이 없다는 것을 명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2. 현재 실시되고 있는 중독 대책들을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게 해줍니다. 지금도 중독 예방이나 치료를 목적으로 수립된 정책들은 '정상인'의 관점에서 중독자들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물리적으로 물질 사용을 방지하는 것이 중독 문제의 거의 유일한 해결책인 것처럼 접근하죠. 대표적으로 '셧다운제'가 있었는데 효과가 있었을까요?  


  우리는 그동안 너무 '중독물'만 바라왔기 때문입니다. 담배면 담배, 술이면 술, 게임이면 게임, 마약이면 마약 등 외적인 것만을 생각했습니다. 이 책은 심리적 요소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음을 말합니다.  
  이들의 심리적 공허함을 건강한 방법으로 보충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요? 유대감이나 지지적인 환경이 도움이 필요하겠지만, 끊임없이 속삭이는 중독의 유혹을 거절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또 다른 방법이 있을까요? 중독의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서 되짚어주었습니다. 충족되지 않은 욕구가 가져올 수 있는 병리적인 관계 형성의 문제와 과정을 되짚어준다는 점에서, 충분히 읽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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